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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변명2

샘솟는 기쁨 2009. 4. 8. 06:00
 삶을 위한 변명- 누렁소 한마리  

허엉허엉 울부짖으며 허공을 차오른 차오른 날부터 우리를 뛰쳐나가려는 새끼 몇마리를 얻었습니다.

이미 길들여진지 오래입니다.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아버지부터 외양간에 매였습니다.

가끔은 꿈을 꿉니다. 풀밭에서 풀을 뜯다가 한가로이 되새김질 하며 세상을 관조하는 삶을 소원합니다.

 

이른 새벽 삶은 여물을 우적우적 먹습니다. 뿌연 입김을 내뿜으면 동리 어귀까지 안개가 가득찹니다.

멀리서 닭의 울음소리와 홰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 밭에 나섭니다. 우주 깊숙히 쟁깃날을 박습니다. 땅을 갈아엎습니다.

산이 솟아오르고 파묻혔던 붉은 태양까지 솟아오릅니다.

턱 밑까지 숨이 차오릅니다. 쟁기질 한 번에 이랑과 고랑의 굴곡을 만들고 그 굴곡같은 사연을 남깁니다. 콩이며 팥이며 참깨며 수수의 뿌리를 감쌀 집채만한 둔덕하나 만들고, 비온 날에는 물길을 터 줍니다.

 

흘러가야 할 것은 흘러가야 하며 머물러야 할 것은 뿌리내려 버텨야 합니다. 

이제는 걸어온 발자국조차 흙으로 뒤덮으며 밭을 갈아야 합니다.

한때는 하늘과 땅을 갈아 엎을 꿈도 꾸었지만 이제는 연애편지의 한줄조차 쓰기 힘들어 합니다. 

한때는 사랑의 시나위를 펼치며 우주를 가슴에 품었지만 지금은 풋사랑에 가슴아파하며 텃밭일구는 일조차 힘겨워 합니다. 

그래도 밭을 갈고 나면 풍성한 가을이 찾아왔고 살오른 알곡은 곡식곡식마다 매달렸습니다.

 

처음에는 자갈밭을 뒤엎어 쟁기질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 밭이 생겼고, 그곳은 해마다 배부른 풍년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배부른 풍년의 약속을 거절하고 싶습니다. 아직은 배부른 나태와 오만한 능숙함에 돌아갈 때가 아닙니다. 아직 갈아야 할 밭이 많이 남았습니다.

 

다시 밭을 갈아야 합니다. 젊었을 때는 숨쉬는 법도 몰랐고 힘자랑을 내세우기 일쑤였습니다.

다시 멍에를 어깨에 걸고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갈 뿐입니다. 자갈밭이든 황토밭이든 그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그 밭 가득 수수가 영글고 들깨가 타박타박 떨어지고 콩깍지 뒤틀리며,가끔은 콩을 튀겨내고 새들이 알곡을 훔쳐가도 모르는 허수아비가 웃을 때가지 그길을 갈뿐입니다.

 

더 이상 세상을 향해 원통하다 소리치지 않고 어깨 들썪이며 씩씩대지 않고 걸은 흔적 흙에 뒤덮여도 그냥 가다 보면 그 곳에 곡식뿌리내릴 이랑과 흘러갈 물길의 고랑이 만들어지며 춤을 출 것입니다.

바다만한 파도는 만들지 못해도 잡초와 곡식은 구분되는 텃밭은 만들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논에 빠지기도 할 것입니다.

못자리만들려고 써래질을 하다보면 발은 푹푹 빠지고 제가 밟아 만든 구덩이에 제 발이 빠져 넘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제 발로 만든 구덩이에 빠져 넘어져야 더 많은 구덩이를 만들수 있습니다.

그 구덩이 속으로 천하가 뒤덮여 들어오고 우주의 씨앗을 심을 수 있습니다. 그 곳에서 하늘을 받치는 묘종은 싹을 틔우고 벼가 자랄 것입니다. 서로 부대끼며 사는 법도 함께 배울 것입니다.

 

다시 새벽마다 논두렁을 걸어야 합니다.

논두렁을 밟으며 걷는 발걸음을 듣고 벼는 자랄 것입니다. 입안 가득 붉은 해를 웅큼웅큼 베어먹으며 자랄 것입니다.

허엉허엉 울부짖으며 허공을 차오른 차오른 날부터 우리를 뛰쳐나가려는 새끼 몇마리를 얻었습니다. 이미 길들여진지 오래입니다.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아버지부터 외양간에 매였습니다. 가끔은 꿈을 꿉니다.

풀밭에서 풀을 뜯다가 한가로이 되새김질 하며 세상을 관조하는 삶을 소원합니다.

 

-여름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