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솟는 기쁨 2010. 1. 9. 11:48

빈들

        -강연호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누구도 그립지 않은날

혼자 쌀을 안치고 국 덥히는 저녁이면

인간의 끼니가 얼마나 눈물 겨운지 알게 됩니다

 

멀리 서툰 뜀박질을 연습하던 바람다발

귀 기울이면 어느새 봉창 틈새로 기어들어와

밥물 끓어 넘치듯 안타까운 생각들을 툭툭 끊어놓고

책상위 쓰다만 편지를 먼져 읽고 갑니다

 

서둘러 저녁상 물려보면 매양 채우지 못하는

끝인사 두어줄 남은 글귀가 영 신통치 않은채

이미 입동지난 가을 저녁의 이내 자욱이 깔려

영긴 실꾸리 풀듯 등불 풀어야 합니다

 

그래요 이런 날에는 외투 걸치고 골목길 빠져나와

마을 앞자락 넓게 펼쳐진 빈들에 나가지 않으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누구도 그립지 않은날

웅크린 집들의 추위처럼 흔들리는 제 가슴 속

아 이곳이 어딥니까 , 바로 빈들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