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솟는 기쁨
2008. 11. 16. 11:43
정신의 진화 - 4 |
4. 인체의 생화학 작용은 의식의 산물이다.
낡은 패러다임이 지니고 있는 가장 중대한 한계 중의 하나는,
인체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설명함에 있어서
그 사람의 의식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전제이다.
그러나 질병의 치료는 그 사람의 신념, 추측, 기대,
그리고 자신에 대한 자아상을 또한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인체를 마음이 없는 기계로 보는 입장이
아직도 서양의학의 주류를 지배하고 있지만,
그와는 반대되는 의심할 수 없는 증거들이 있다.
암이나 심장질환으로 사망하는 비율은 아무래도 심리적인 압박감을
가진 사람들이 더 높고, 목적의식이 강하고 행복한 사람들은 더 낮다.
최근 몇 해 동안 이루어진 의학연구 결과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의 하나는 스탠퍼드 대학의 정신의학자인
데이비드 스피겔(David Spiegel)이 행한 실험이다.
그는 환자의 마음상태가 암의 극복과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그는 많은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환자의 신념과 태도에 중요한 의미를 두는 것이
이로운 점보다는 해로운 점이 더 많으리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암을 일으킨 원인은 나에게 있다'는 식의 생각은
죄의식과 자기비판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었다.
스피겔은 유방암이 상당히 진전된 86명의 여성
(그들의 병은 관행요법으로는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태였다)
들을 대상으로, 그들 중의 반수에게 매주 자기최면법 강의와 결합된
정신요법을 행했다. 어느 모로 보나 이것은 최소한의 개입이다.
일주일에 한 시간, 그것도 여러 명의 환자가 함께 하는 요법으로써
죽음이 불가피하게 된 말기 증상의 병과 어떻게 싸울 수가 있었겠는가?
결과는 뻔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험 대상자들을 10년 동안 추적해 본 스피겔은 요법을 받은
그룹이 요법을 받지 않은 그룹보다 평균 두 배나 오래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최근까지 단지 세 명만이 살아 있었는데, 그들 모두 요법을 받은
그룹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이 연구결과는 연구자가 그 효과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라서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연구자들한테서도 이와 비슷한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왔다.
예일 대학의 젠센(M. R. Jensen)이 보고한 1987년의
신중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감정을 억누르고 절망감에 빠지고
분노나 두려움, 기타 부정적인 감정을 발산하지 못하는 성격을 지닌
여성들에게는 유방암이 빠르게 퍼져 나간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류머티즘 관절염이나 천식, 난치성 통증,
그리고 기타의 장애 증상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발견이 보고 되었다.
낡은 패러다임에 빠져 있는 의사들은 이러한 연구결과에 대해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통찰력이 번득이는
저서 <의학과 의미(Medicine and Meaning)>에서
래리 도시(Larry Dossey)가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의학 회보나 의과대학 강단에서 끊임없이 설교되고 있는
지배적 교훈은 '전래의 병리학'만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며,
느낌, 감정, 태도 등은 한갓 들러리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감정이란 외딴 정신의 공간 속을 스치듯 지나가는 사건이 아니라
의식의 표현이며 생명의 근본적인 질료라는 사실이다.
모든 종교 전통 속에서 생명의 숨결은 곧 영혼이다.
영혼을 고양시킨다거나 저하시킨다는 것은 인체가 반드시
반영해야 할 근본적인 어떤 것을 의미한다.
의식은 노화현상에 매우 큰 차이를 가져온다.
고등한 생명 형태를 지닌 모든 종이 노화하지만,
오직 인간만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인식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인식을 다시 노화 자체로 재 번역한다.
늙어가는 것에 절망을 느끼기 때문에 한층 더 발리 늙어가는 것이다.
반대로 그것을 아량으로 받아들이면 육체적?정신적인
많은 불행을 막아낼 수 있다.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는 만큼만 늙는다'는
속담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생각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자연계의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와 정보의 자극이다.
우리가 나무, 별, 산, 바다라고 부르는 에너지와 정보의 덩어리도
자연계의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은 한 가지 중요한 면에서 이와는 다르다.
자연계는 자신의 생각의 형태가 일단 정해지면
거기에 고정되어 버린다.
행성이나 나무와 같은 사물은 생겨나고 발달하고
쇠퇴하고 분해 되는 자동적 단계의 성장 사이클을 따른다.
그러나 인간은 생명의 주기 속에 갇히지 않는다.
인식능력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반응에 참여한다. 우리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을 때 문제가 일어난다.
마이클 탤보트(Michael Talbot)는 자신의 저서
<홀로그램 우주(The Holographic Universe)>라는 책에서
이것을 희랍 신화에 나오는 마이더스 왕에 빗대어
재치 있게 이야기한다. 자기가 손을 대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해 버리므로,
마이더스 왕은 사물의 실질적인 재질을 알 수가 없다.
물도, 밀알도, 살도, 깃털도, 모두가 그가 손을 대는 순간
단단한 금속으로 바뀌어 버린다. 이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우리의 의식은 양자의 장을 일상의 물질적 현실로 바꾸어 버리므로
우리는 양자적 현실 그 자체의 재질을 알 수가 없다.
오감을 통해서도 알 수 없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생각 또한 양자의 장을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생각은 공허의 무한한 가능성을
어떤 시공간적(時空間的) 사건으로 바꾸어 놓는다.
우리가 육체라고 부르는 것도 역시 특정한 시공간적 사건이다.
우리는 순전히 추상적인 잠재력을 고형의 물체로 바꾸어 놓은
마이더스의 손을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육체의 물질성만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의식을 의식하지' 못하는 한,
육체를 바꾸어 놓는 자신의 행위를 깨닫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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