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계신 붓다,살아 계신 그리스도-탁닛한
명상이란 고요함입니다. 앉으나 서나 걷고 있으나 모두 고요히 하는 것입니다.
명상은 깊이 들여다보는 것, 깊이 체험하는 것, 그래서 우리가 이미 고향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향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명상을 실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인간 예수님에게 태어났습니다.
그후 예수님은 40일간 광야에 나가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명상을 실천하시고 성령을 튼튼하게 하셔서 완전히 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자세로 명상하셨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만, 제가 생각하기로 분명히 '앉아서 하는 명상'과 '걸으면서 하는 명상'을 실행하셨을 것이고,깊이 들여다봄, 깊이접촉함, 그안에 있는 성령 에너지를 북돋는 일 등을 강행하셨을 것입니다. 부처님처럼 보리수 밑에 앉아 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예수님의 형상은 주로 십자가에 달린 모습입니다. 이것은 저를 무척 괴롭게 합니다. 이것은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형상으로써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대접일 수 없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 기독교 길벗들이 예수님을 그릴때, 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계신 모습이나 명상에 잠긴 채 걷는 모습같이, 뭔가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그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옝수님의 모습을 보며 생각할 때, 우리마음에 파고드는 평화와 기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스님의 글 몇 구절만 인용한 것이다. 예수는 없다(오강남) 중에서...
함석헌 선생님의 스승이신 유영모선생님은 열성으로 다니던 교회를 안나가게 되었다.
유영모는 교회를 학교처럼 졸업한 것으로 여겼다. '내가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된 것은 내가 예수를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라 집에서 혼자 성경을 보고 싶어서이다.'했다.
유영모는 예수의 말과 같이 예수가 주는 말씀의 물을 받아 마시고는 류영모자신의 마음속에서 영원한 생명인 생수가 샘솟은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남에게 물 얻으러 다닐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유영모는 멸망의 생명인 제나로 부터 자유하는 영원한 생면인 얼나로 솟난 사람이다.
자극히 높은 데 계신 완전한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자는 예수의 인생관이라고 생각된다. 나도 이러한 인생관을 갖고 싶다. 이런 점에서 예수와 나와 관계가 있는 것이지 이밖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간디에게 힌두교 냄새가 나지 않는다. 류영모는 기독교를 믿었다. 그리고 개종한 일은 없다. 그러나 류영모에게 기독교 냄새가 나지 않는다. 간디나 류영모는 종교를 초극하는 구경각에 이른 것이다. 예수, 석가가 보여 준 가장 바람직한 신앙생활인 것이다. 사람이 예수 석가처럼, 간디 류영모처럼 종교에 매이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땅위에서 자기가 믿는 종교만이 유일절대한 구원의 종교라면서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이른바 종교근본주의가 가는 곳마다 증오와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진리되시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다. 얼나 아닌 제나로 탐. 진. 치 의 짐승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석의 기독교론에 대해서...예수는 없다(오강남) 인용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