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글

연애 잔혹사

샘솟는 기쁨 2009. 3. 20. 14:43

고윤희, 연애잔혹사, M&K 2007. 12

영화 ‘연애의 목적’의 시나리오 작가인 고윤희의 연애분석서, 처음 이 주제로 책을기획했을 때 두 달이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2년이 걸렸단다. 구성이 재미있다. ‘해피엔드’, ‘번지점프를 하다’처럼 널리 알려진 영화 열두 편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내되, 영화보다는 저자의 취재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 책을 쓰기위해 천 명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책이 아주 탄탄하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아주 재미있기도 하다. 작심하고 연애문제를 까발기는 감각적인 문체가 일품인데, 그 밑에 저자의 최상주의자의 면모가 느껴진다. ‘연상연하커플의 속사정’, ‘들이댐의 기술’, ‘그 놈의 COOL'... 이런 식의 편안한 표현이지만 지독한 자료조사에서만 나올 수 있는 중량감이 뿌듯하다.


그리하여 이 책은 사랑, 연애, 남과 여, 결혼... 등에 대한 아주 솔직하고 실제적이면서도, 중심철학이 단단한 안내서가 되었다. 좀처럼 책으로 전수되지 않으며 사석에서도 귀동냥하기 어려웠던, 그러면서도 누구에게나 필요한 연애학이다. 본격적인 것은 직접 읽어보시기 바라며 약간의 본문을 인용한다.


사랑에 올인해서 다쳐본 사람들은 의외로 사랑에 대한 환타지가 없다. 뭐가 됐든 막장까지 가보면 의외로 덤덤해지고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완전히 던질 줄 모르는 사람들이 사랑에 대한 환타지가 많다. 이들은 드라마 영화 소설을 통해 자신이 가보지 못한 길을 간접체험하며 환타지만 키워서 실제 연애에서는 병신짓을 하고 만다. 한 번의 미친 연애는 상대방을 사람 그 자체로 보게 하는 마음의 눈을 만들어준다. 그런 찐한 연애를 한 번도 못해본 사람이라면 그가 뛰어난 사회적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감정적으로 어린애일 가능성이 높다.


스토커가 되어버리는 것은 자기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혼계약서가 있다고 해서 남편이 자기 소유물인양 남편의 핸폰 비밀번호를 캔다거나 위치 추적을 한다거나 밤낮으로 전화를 울려서 사회생활까지 침범하는 여자도 모두 스토커다.

죽도록 사랑해도 내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나이가 들고 여자라는 걸 절감하며 살다보니 엄마의 인생에 울화통이 터지는 순간이 많아진다. 엄마의 희생에 고마움보다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낀다. 엄마의 모습은 빚쟁이가 엄청난 부채장부를 들고 버티고 선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하지? 돈으로도 갚을 수 없고, 시간으로도 갚을 수 없는데?

나는 절대 자식에게 부채장부를 쥐어주는 엄마는 되지 말아야지 나를 가장 사랑하는 내 멋대로 멋쟁이 쿨한 엄마가 되어야지. 엄마가 70이 되기 전에 성형수술을 하고 멋진 남자와 세계 일주를 하며 마지막으로 생애 최고의 찐한 연애를 즐겼으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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