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빵을 주지 말고 장미꽃를 선물하라. 빵보다는 빵만드는 기술을, 빵만드는 기술보다는 장미꽃을 선물하라"
겨울 눈발이 출근하지 않고 하늘에 칩거하고 있습니다.
찬바람만 잔뜩 불고 낮은 기온이 날을 세워 세상을 활보하고 있습니다.
나는 학교안에서 이루어지는 소수의 삶에 대한 애착보다는 아주 다양한 범위의 삶을 이해하고자 거리에서 떠돌고 있습니다.
몇 몇의 리더쉽을 위한 훈련보다는 아주 넓은 범위와 영역의 삶에 대해 애착을 느끼고 있습니다.
폭좁은 잣대와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하며 지낸 세월입니다.
삶에는 다양한 관점과 영역, 넓은 범위와 둘레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채 살아온 세월입니다.
빵을 주는 것보다는 빵굽는 기술을 터득하는 일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빵굽는 기술보다는 장미꽃을 선물하는 삶의 영역과 깊이는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아주 다양한 형태와 모습을 이루어집니다.
결코 전형화될수 없으며,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가치있는 삶이란 그저 금그어 놓은 편견과 아집에 불과합니다. 아니 금그어 놓고 자기 영역을 고집하며 사는 일도 이 세상 많은 삶들중의 하나일뿐입니다.
삶은 그렇게 거창하거나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삶이 그렇게 남루하거나 비천한 것도 아닙니다. 삶이 그렇게 사치스럽거나 그렇게 소모적인 것도 아닙니다. 삶이 그렇게 외롭거나 그렇게 축제일 같거나 잔치집같은 것도 아닙니다.
삶은 그저 매혹된 일에 정성을 쏟는 일입니다.
삶은 그저 마음 가득 매료된 일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옆집에서 버리려고 내놓은 먼지묻은 책속에서 소중한 책 한권을 골라 다시 읽어보는 일과 같습니다. 10여년전의 친구와 만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오랫동안 관심갖고 살았던 일을 들어보는 일입니다.
마음 터놓고 지낸 친구와 헤어지고 찬 바람맞으며 내 집의 따뜻한 방을 그리워하는 일입니다.
삶은 그렇게 즐겁거나 고통스럽지도 않습니다.
삶이 그렇게 먼곳이 어느날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옛날의 걸었던 추억 속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삶이 대단한 명성을 위해 사는 것도 아닙니다.
삶이 큰 이익을 남기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닙니다.
삶은 그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일입니다.
바로 지금 이곳에서 만난 어느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아픔과 슬픔을 느껴보는 일입니다.
오랫만의 친구 전화에 감사하며 밤늦은 시간 친구를 향해 달려 나가는 일입니다. 친구가 고단함과 불편함을 이야기할 때 바로 옆에서 함께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 시간을 함께 나누는 일입니다.
삶은 내가 살아온 삶의 가치와 삶의 범위를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삶은 자신이 경험했거나 알고 있는 삶의 범주를 아이에게 되물려주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이미 살아온 삶의 영역보다는 더 나은 삶이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일입니다.
삶은 내가 알지 못하더라도 아이가 발견한 삶의 영역과 가치를 존중하는 일입니다. 삶은 내가 경험하지 못했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찾은 길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삶은 아이에게 내가 살아온 것보다 더 나은 살의 길이 있음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삶은 내가 빵을 얻지 못했더라도 빵굽는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노력하였더라도 아이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는 일입니다.
삶은 아이들이 아버지의 말로 크지 않으며 아버지의 눈앞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스스로 배우며 성장하는 일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삶은 아이들이 가정과 학교보다는 마을과 동네 어른들을 보면서 성장하는 이치를 아는 일입니다.
삶은 아이들이 그 시대의 문화속에서 성장하는 일임을 아는 일입니다. 아버지 혼자 학교 안에서만 크지 않습니다.
삶은 아이에게 내가 살아온 삶보다 더 나은 삶의 길이 있음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내가 기타를 배우지 못했더라도 아이에게 기타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아이가 기타를 배우면 내가 살지 못했던 삶의 영역을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범위, 내가 경험한 삶의 영역을 넘어 또다른 삶의 영역과 가치를 배워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아이의 생일 날 기타치며 노래부르는 삶을 살지 못했지만 아이가 커서 아버지가 되면 자신의 아들에게 기타연주를 해주는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름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