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몸과 마음은 떼놓을 수 없는 하나이다.
지능은 그것을 가리고 있는 물질이라는 가면보다 훨씬 더 융통성이 있다.
그 자신을 사념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분자로써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두려움과 같은 기본적인 감정은 하나의 추상적인 느낌으로
묘사될 수도 있고, 혹은 눈에 보이는 아드레날린 호르몬의 분자로
묘사될 수도 있다. 느낌이 없이는 호르몬도 없으며,
호르몬이 없이는 느낌도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신호가 없으면 통증도 없고, 통증의 수용체에 꼭 들어맞아서
통증의 신호를 차단시키는 엔도르핀(endorpin)이 없으면
통증으로부터 해방될 수도 없다.
심신상관 의학(Mindbody medicine)이라고 불리는 혁명은
이 단순한 발견 위에 근거한 것이다.
생각이 가는 곳에 화학물질이 동반된다. 이러한 통찰이,
예컨대 남편을 최근에 사별한 여성들에게 유방암이 일어나는
확률이 왜 두 배나 더 높은지, 또 오랫동안 우울함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 병을 얻는 확률이 왜 네 배나 더 높은지 등을
이해하는 데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정신적인 압박상태가 질병을 일으키는
생체화학물질로 변환된 것이다.
나의 임상 경험에서도,
쥐어짜는 듯이 숨 막히는 통증을 유발하는 심장계통의
대표적인 질환인 협심증 환자가 두 사람 있었는데,
한 사람은 통증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전혀 느끼지도 않고
달리기와 수영, 심지어는 등산까지 즐기는데 비하여
다른 사람은 팔걸이의자에서 일어나려고만 해도
거의 까무러칠 정도의 통증에 시달리는 사례를 목격할 수 있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 두 사람의 신체적인 차이를 조사해 볼 것이지만,
그것은 발견할 수도 있고 전혀 발견 못할 수도 있다.
심장병 전문의들은 세 개의 관상동맥 중에서
최소한 하나가 50퍼센트 이상 막혔을 때
협심증의 통증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혈관이 막히는 것은 대부분이 죽은 세포, 응고된 혈액,
지방질이 낀 혈소판 등이 혈관내벽에 끼어서 이루어진
동맥경화의 형태이다.
그러나 50퍼센트라는 수치는 단지 어림짐작일 뿐이다.
어떤 협심증 환자들은 오직 관상동맥의 한 군데에만
혈행을 방해하는 작은 병변(病變)을 가지고도
통증으로 장애인이 되는 반면,
다른 환자들은 관상동맥을 85퍼센트까지 말고 있는 덩어리들을
여러 군데에 지니고도 마라톤 코스를 뛴다고 알려져 있다.
(덧붙일 것은, 협심증은 반드시 어떤 물질이 낄 경우에만
발병되는 것은 아니다. 관상동맥에는 근육세포층이 붙어 있는데,
이것이 경련을 일으켜서 혈관이 닫혀 있을 때에도 박동하여
통증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데 따라 반응이 매우 다르다.)
심신상관 의학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나의 두 환자는 통증에 대한 각자의 서로 다른 해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환자들이 자신의 상황에 대해
자신만의 특유한 낙인을 찍는다.
그리고 통증(혹은 기타의 증상)은 심신체계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과거의 모든 영향들과 상호 작용한 다음에야 의식 속으로 떠오른다.
모든 사람이, 아니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일에
항상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없다.
통증의 신호는 다양한 용도로 변환될 수 있는 원시 데이터일 뿐이다.
장거리 달리기 같이 많은 체력을 소모하는 경기는
선수로 하여금 고통을 성취의 신호
('고통 없이는 성취도 없다'라는 속담을 보라)로
해석하게끔 만들지만, 똑같은 고통이 다른 상황에서 주어지면
전혀 달갑지 않을 것이다. 육상 선수들은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코치를 존경하지만,
신병훈련소에서 그와 같은 훈련을 받으면 교관을 증오한다.
의학은 이제 막 심신의 상관관계를 치료에
이용하기 시작하고 있다. 통증 치료가 그 좋은 보기이다.
플라시보(placebo), 즉 가짜 약을 투여하면 30퍼센트의 환자는
정말 진통제를 투여한 것과 같은 진통효과를 경험한다.
그러나 심신의 상관효과는 이보다 훨씬 더 전일적(全一的)이다.
똑같은 가짜 약으로써 진통을 겪게도 하고,
위궤양 환자의 과다한 위산분비를 멈추게도 하며,
혈압을 낮추기도 하고, 항암제 역할도 한다.
(설탕으로 만든 약을 환자에게 주면서 강력한 항암제라고
믿게 하여 머리가 빠지고 구토증이 나는 등 화학요법이
일으키는 모든 부작용이 나타나게 할 수도 있으며,
생리식염수 주사로 말기의 악성 종양을 실제로 완화시킨 예도 있다.)
약효가 없는 동일한 약물로써 이처럼 전혀 다른 반응을 이끌어
낼 수가 있으므로, 마음에 적당한 암시만 주면 인체는
'그 어떠한' 생화학 반응이든지 만들어 낼 능력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다.
가짜 약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플라시보 효과를 나타내는 힘은 다름 아닌 암시의 힘이다.
이 암시가 인체가 자신을 치유하려는 의지로 변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짜 약으로 환자를 속이는 짓을 그만두고,
바로 그 '치유의 의지'로 접근하는 것이 어떨까?
만약 우리가 늙지 않으려면 의지를 효과적으로
발동시킬 수만 있다면 인체는 그것을 자동으로 실행할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매우 흥미로운 증거를 가지고 있다. 노인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병중의 하나는 파킨슨병이라는 신경장애로서,
근육운동을 조절할 수 없어서 걷기와 같은 신체동작이
극도로 느려지다가 결국은 전혀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로
몸이 경직되게 만드는 병이다. 파킨슨병은 도파민(dopamin)이라는
뇌의 매우 중요한 화학물질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고갈되는 것이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편 어떤 종류의 약물에 의해
도파민을 생산하는 뇌세포가 파괴되어서 일어나는
파킨슨병 증상도 있다. 이 두 번째 형태의 증상의 심화되어
거동이 거의 불가능한 어떤 환자를 가정해보자.
그는 안간힘으로 겨우 한두 걸음을 옮기고는
다시 동상처럼 뻣뻣이 얼어붙는다.
그러나 바닥에다 금을 그어 놓고 "이 금을 밟아 보세요."
하고 말하면 그 사람은 마치 기적과도 같이
그 금 위에 설 수가 있다. 도파민을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자율적인 기능이며, 저장된 것은 완전히 소모되었다는
사실(거의 뇌가 다리의 근육에게 한 걸음 더 움직이도록 신호를
보내지 못한다는 사실로써 알 수 있는 것처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걸음을 걷고자 하는 의지에 의해서 뇌가 깨어난 것이다.
그 사람은 몇 초만 지나면 다시 얼어붙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그에게 마음속으로 금을 긋고 그것을 밟아 보라고 하면
그의 뇌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부연하자면,
노인들의 쇠약이나 활동력 감퇴는 대부분의 경우
단지 휴지상태일 뿐이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활동적으로
생활하고자 하는 의지만 재확인시켜 주면,
많은 노인들이 운동능력과 체력과 민첩성과
정신반응을 극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
의지는 의식집중의 적극적인 동업자이다.
의지는 우리가 자동적인 과정을 의식적인 과정으로
변환시키는 방법이다. 거의 대부분의 환자가 간단한
심신상관관계 훈련을 이용해서 빠른 맥박과 천식성 기침,
뭔지 모를 불안감을 몇 번만에 좀더 정상적인 반응으로 바꾸어
놓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자신의 통제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일도 적절한 기법을 이용하여 다시 통제권 안으로 가져올 수가 있다.
이것이 노화에 대해 시사하는 의미는 매우 크다.
예컨대 '나는 정력과 활동력을 나날이 증진시키고 싶다'는 식의
의지를 사고과정에 주입함으로써, 활동에 표현되는 에너지의 양을
결정하는 대뇌중추에 통제력을 행사하기 시작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 활동력이 감퇴하는 것은 대부분이 그렇게 감퇴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기대'한 결과이다.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패배적인 의지를 강한 신념의 형태로
심어 놓은 것이다. 그리하여 심신의 상관관계가
이러한 의지를 자동으로 실행하게 된다.
과거에 우리가 지녔던 의지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구시대의 프로그램을 만든다. 사실은, 의지의 힘은 언제든지
다시 각성시킬 수가 있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당신의 의지를
사용하여 의식적으로 마음을 프로그래밍 함으로써,
나이가 들기 전에 일찌감치 그와 같은 손실을 방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