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수다

아버지와 낚시터

샘솟는 기쁨 2014. 4. 14. 10:36

 

  봄 햇살이 제대로 물올랐다.  어디론가 나가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여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낚시가 취미인 남편은 첫 새벽부터 일어나 거실을 가로 지르며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침대머리에 대고 “낚시 간 다이” 한다. 혼자 휴일을 보내는 것이 못 마땅하지만 쿨 하게 잘 갔다 오라고 말해 놓고, “매번 허탕치고 오면서 낚시는 왜 또 나설까?” 하고 속으로 중얼 거린다. 아담한 키에 조금은 마른 남편이 현관문을 나서는 뒷모습을 보니, 젊은 날의 아버지가 걸어가는 듯하다.

 

 

  초등학교 다닐 적에 나는 도시락을 들고 천방둑길을 수도 없이 오갔다. 엄마가 싸 주신 도시락 심부름 때문이다. 넓은 호숫가에 드문드문 있는 사람들 중에 아버지를 찾아 낚시터 주위에 다다르면 숨죽여 살금살금 걷는다. 왜냐하면 뛰면 물고기가 놀래 달아 난다고 아버지께서 몇 번의 주의를 줬기 때문이다. 식사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빈 도시락을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 왔다. 요즘도 우리형제들은 어린나이에 땀 흘리며 먼 길을 오가던 일이 힘들었다고 이야기 하곤 한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간경화로 아프셔서 일을 못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께서는 거의 낚시터에서 살다시피 하셨다. 우리 고향은 산골이라 민물낚시를 주로 하였고, 아예 작은방 하나는 아버지 낚싯대와 낚시도구만 두는, 방이 되었다. 어떨 땐 지렁이가 방에서 기어 나와 기겁을 한 적도 있다. 아버지가 아파서 일을 못하는 동안 엄마가 장사를 하셔서 힘들게 우리를 키우셨다. 그때는 엄마의 고생하시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아버지가 낚시 가시는 것이 정말 싫었다. 그래서 원망도 많이 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아버지의 낚시는 또 다른 살기위한 몸부림 이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어린 다섯 남매의 장래가 얼마나 아버지의 어깨를 짓눌렀을까? 몸은 마음을 따라 주지 않고, 고생하는 엄마 모습이 마음 아프셨을 것이다. 낚시를 하며 모든 현실을 잊고 싶었을 것 같기도 하다. 우리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아버지께 대충 배우고 갔다. 엄마의 자리를 아버지께서 대신 하신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겨주는 엄마 대신, 끙끙 앓고 누워 계시는 아버지 모습이 싫어서 가방을 던져 놓고 밖에서 해가 질 때까지 놀기도 했다. 그렇다고 나의 어린 시절이 그렇게 암울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차츰 기력을 회복해 나갔고, 가끔씩 영화를 좋아 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극장에도 가고, 낚시터에도 따라 다녔다. 호수 속에 하늘이 그대로 포개져 있고, 새소리, 물소리, 풀벌레 소리뿐,, 고요한 그곳에선 어린 나의 마음도 평온해 졌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초등학교 3학년쯤에는 몸이 완전히 회복 되신 아버지는 라이터와 안경을 팔고, 수리도 하는 장사를 시작하셨다. 그 후 우리 집은 넉넉하진 않았지만 별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요즘도 여행하다가 가끔씩 조용한 호숫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는 강태공들을 볼 때면, 먼 옛날 아버지와의 추억 모음들이 생각이 난다. 밤낚시를 할 때면 밤하늘에 빼곡히 박힌 별들은 바로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릴 것처럼 가까이서 반짝였다. 그 풍경은 가슴 깊숙이 짱박아 놓고 싶은 기억들이다. 지금은 볼 수 없는 그리운 아버지의 모습과 함께...

 

  우리네 인생길은 평탄한 길도 있지만, 깊은 수렁 속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많다. 그런 힘들고 고통스런 일이 생길 때나, 짜증이 괴어오를 때마다, 찾아가고 싶은 장소가 필요하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그곳에서 나를 내려놓고 조용히 진정한 내면의 나와 대화를 하는 곳 말이다. 자잘한 시름과 번뇌와 욕심을 풀어 놓고 통찰하는 시간을 가지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아침, 낚시를 떠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그에게도 아버지의 낚시터 같은, 영혼의 안식처가 꼭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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