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방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고미숙

샘솟는 기쁨 2014. 6. 17. 09:18

 

신기하게도 연구실 활동을 시작하고부터 그 시절이 문득문득 스쳐 지나갔다. 

아득한 망각의 늪을 가로질러 마치 어제의 일인 양 생생하게 말이다.  느닷없는 과거와의 만남에 종종 당혹스러웠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나는 추억에 잠겼던 게 아니라 세포 깊숙이 잠들어 있던 열정들과 대면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정체불명의 열정에 이끌려 낯설고 모험적인 삶을 구성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30대 후반에 다시 새로운 길을 떠나는 중년의 나에게 말을 건내온 것이었다.

 

용기를 잃지 말라고, 어디에서도 출구는 있다고, 그런 점에서 이 글은 내가 연구하는 '수유+너머'를 통해 만난 나 자신과의 대화록이기도 하다.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아주 낯선 방식으로 전혀 다른 자신의 모습과 마주칠 수 있기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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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시작된 걸음이 어느덧 삶과 지식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지식과 일상이 하나로 중첩되고, 일상이 다시 축제가 되는 기묘한 실험이 이루어지는 곳, 도시의 중산층으로 편입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모색되는 곳, 혁명과 구도가 일치하는 비전이 탐색되는 곳, 연구공간'수유+너머'는 바로 그런 곳이다​.

예기치 않은 마주침을 가능케 하고 끊임없이 낯선 삶과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는 운명의 장난, 이 우발적인 필드 위에서 우리는 날마다 스릴과 서스팬스를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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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금 간판이나​ 내걸고 있는 지도자를 찾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차라리 벗을 찾아 단결하여, 이것이 바로 생존의 길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이 나으리라.

그대들에게는 넘치는 활력이 있다.  밀림은 만나면 밀림을 개척하고, 광야를 만나면 광야를 개간하고,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 우물을 파라.

이미 가시덤불로 막혀 있는 낡은 길을 찾아 무엇 할 것이며, 너절한 스승을 찾아 무엇 할 것인가!

-루쉰「청년과 지도자」중​

 

경계를 가로질러 넘나드는 지식이란 쉬임 없이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인도한다.  거기에서는 원초의 권위나 노년의 안식 따위는 필요 없다.

가슴 벅찬 열정과 끈질긴 지구력만이 요구될 뿐, 물론 그 세계를 자유롭게 가로지르기 위해서는 이전에 메고 다니던 뗏목을 내려놓아야 한다.  치열하게 접속하되 때가 되면 가차 없이 내려놓고 떠나는 것, '횡단'이란 무릇 이런 것이다.

예정된 일들만 일어난다면 삶이 얼마나 메마르고 썰렁할 것인가.

거꾸로 말하면 우발적인 마주침이 많을수록 삶은 그 만큼 역동적이 된다.

그렇게 보면, 코뮌이란 예기치 않은 마주침과 사건이 수시로 일어나는 곳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노마디즘을 사랑할 뿐, 그것을 이념적 지주로 떠받들지는 않는다.  우리는 노마디즘의 용법을 몸으로, 삶으로 익히고 싶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천 개의 고원'의 용법'노마디즘'의 응용일​ 뿐이다.  뗏목이 되는 순간, 그것조차 놓아버릴 작정이다.  길은 어차피 우리 스스로가 직접 열어야 하는 것이므로…….

​만남이 그러하듯 길 또한 엉뚱하고 우발적인 방향에서 열린다.

 

잘 안 된 경우는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름 하여 쾌망, 한의학에서는 암예방법 가운데 ​하나로 칠 만큼 중요한 덕목이란다.

니체는 그런 걸 '망각의 능력' 이라고 했다.

 

앎이란 즐거움이다.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천으로서의 지식, 그것은 원초적 본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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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악금

『삼국유사』​'수로부인 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수로부인은 용모가 너무 아름다워서 가는 곳마다 괴물들이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지곤 한다.

한 번은 동해 용왕에게 납치되었는데, 수행원들이 당황하여 발을 동동 구르자 한 노인이 나타나 방법을 일러준다.  '뭇 사람들의입은 쇠도 녹이는 법' 이니 떼로 모여서 노래를 부르라는 것이다.  그때 부른 노래가 고대가요(구지가)와 노랫말이​ 비슷한 (해가)이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 부인을 내 놓아라.  남의 부인 앗아간 죄 그 얼마나 큰가.  만일 내 놓지 않으면 그물로 옭아 구워먹으리' 라는 내용인데, 유치찬란하긴 하지만 이 노래 덕택에 수로부인이 무사히 돌아 왔다고 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자꾸 입으로 떠들어대라.

그러면 이루어 질 것이다.' 라는

말하자면 원하는 바를 머리말로 표현함으로써 뜻하는 바를 선취하는 주술적 전략을 구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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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주의의 속내는 참 허망하기 그지없다…….

중형아파트, 근사한 자동차, 남부럽지 않은 소비, 일류대학교, 노년을 위한 보험

우리시대 가족주의자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지표들이다.

이 점에 관한한 상류층이건 하층민이건 거의 예외가 없다.

이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는 거기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가 되고, 이미 거기에 도달한 경우는 좀 더 상승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결국은 모두 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셈이다.

이 레일 위에 올라서는 순간 자기가 무엇 때문에, 또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알지 못한 채 무조건 달려가는 사태가 벌어진다.  맹목의 질주! 지극히 당연하게도 욕망의 주체가 자신이 아니기에 목표에 도달한다 해도 절대 만족감을 느낄 수가 없다.

끝없는 갈증 아니면 참을 수 없는 공허감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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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하게 하는 것이다!

소유와 집착이 아니라, 혹은 자기와의 동일성에의 요구가 아니라, 그의 본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도록 촉발해 주는 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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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되 철저히 독립적인 관계, 예속과 집착을 너머 자유 속에서 공존하는 삶, 너무 건조하게 보이는가?

오 천만에! 이들의 일상은 축제의 연속이다.

 

사랑에 집착과 소유가 아니라면 그것은 재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소유와 집착이 될 때 더 많은 돈, 더 큰집, 더 훌륭한 지위가 필요한 것이다.

소유욕과 희생적 헌신이라는 낡은 도식을 벗어나면 사랑에 빠져도, 그리고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와도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생에 대한 능동적 에너지를 거침없이 발산시키는 것, 형식이 어떠하고 사랑과 결혼에서 이것을 구현할 수 없다면 그건 모두 사기다!

 

사랑은 노동의 생명력과 분리될 수 없다.

왜냐 하면 사랑이 생에 대한 기쁨이라면 그 충만함은 흘러넘치게 마련이다.  흘러 넘치지 않고 단지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만 멈추어 버린다면?  그렇다면 두 가지 길이 있을 뿐이다.

하는 짧은 열정 위의 긴 권태, 그리고 그 이후에는  권태를 제도와 도덕의 힘으로 버티려는 안간힘.

그리하여 다시 연민과 희생이라는 수렁 속으로 들어가면서 체념하는 것, 다른 하나는 변태적 쾌락을 길, 사랑의 강도를 단지 성욕의 강렬함으로 해소하려는 처절한 고투, 그 종국에는 '죽음 충동' 이 똬리를 틀고 있다.  쾌락은 삶의 욕망을 생성하기는 커녕, 끊임없이 그것을 소거함으로써 마침내는 육체의 소멸, 곧 죽음을 욕망하는 경계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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