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수다

사과 반쪽의 행복

샘솟는 기쁨 2014. 9. 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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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스한 몰골로 부엌으로 향했다. 속 쓰림을 달래기 위해 우선 물 한 잔부터 들이킨다. 고질적인 위장병이 병원을 들락거려도 잠시 좋아졌다가 계속 재발된다. 요즘 들어 속이 아파서 먹기도 힘들고, 몸이 가라 앉아 땅 속으로 한 없이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태엽 장난감처럼 리듬에 맞춰 무심코 살아가는 것 같다. 남은 인생을 멋지게 살려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뭔가 변화를 줘야 할 것 같았다. 혼자 고심 끝에 단식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삶을 깊이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일주일만 집을 비우겠다는 선언을 하고, 세면도구와 편한 옷가지를 챙겨서 단식원에 입소했다.

 

그곳은 힐링센터 라는 간판을 걸고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탁 트인 바다가 보이고 파란 잔디가 운동장처럼 넓게 펼쳐져 있었다. 황토집 내부도 느낌이 좋았다. 원장님께서 내 몸에 달린 오장육부는 유전적으로 작고 꽉 막힌 상태라서 순환이 안 되어 제 기능을 못한다고 했다. 장이 원활하게 활동을 못해서 독소가 쌓이고 그대로 두면 큰 병이 올 수 있다고 염려하셨다. 다행히 며칠째 별로 먹은 것이 없어서 바로 단식에 들어갔다.

 

하루 일과는 아침 여섯 시에 기상해서 저녁 열 시 삼십 분까지 프로그램에 맞추어 진행 되었다. 풍욕을 시작으로 각탕족욕, 오행쑥뜸, 관장, 된장찜질, 잔디밭 맨발로 걷기, 겨자탕, 냉온욕, 모관운동, 붕어운동을 수시로 했다. 이렇게 빡센 일정 속에 하루에 일 리터짜리 생수병으로 소금물 한 병, 지장수 일곱 병을 의무적으로 마셔야 했다. 평소 물을 거의 먹지 않던 나는 물 먹는 게 큰 고역이었다. 퇴소해서도 네 병은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틀정도는 계속 장 속에 있던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고 나니 돌처럼 딱딱하고 차가웠던 배가 조금은 말랑해지고 따뜻해져 왔다. 된장을 배에 붙이고 따뜻한 온열찜질을 네 시간가까이 하고, 잘 때도 반복해서 또 네 시간을 더 한다. 자다가 화장실에 갈 때도 찜질팩을 안고 다녀와야 하고 옷에 된장 범벅이 되기도 했다. 하루에 두 번씩 관장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스가 올라가면 머리가 아파서 견디기 힘들어진다고 했다.

 

오전 아홉시에는 모두 해수탕으로 가서 냉온욕을 한다. 각 일 분씩 냉탕 여덟 번, 온탕 일곱 번 오간다. 냉탕에서 시작해서 냉탕으로 끝낸다. 감기기가 있을 때도 냉온욕을 하면 좋다고 한다. 처음 이십분 동안 냉탕에 들어가서 탄수화물 독소를 뺀다고 한다. 빵이나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들은 자주 하면 좋다. 피부도 정말 좋아진다.

 

저녁에 하는 겨자탕은 자기 몸의 많은 독소를 배출한다. 온수를 욕조에 받고 겨자 백 그람과 소금 한 줌을 넣고 들어가서 이십 분간 담근다. 그리고 물로만 행구고 나온다. 비누칠이나 샴푸를 하면 안 된다. 탕에서 나오면 몸이 정말 나른해 진다.

 

아침에 감잎차를 우려내어 한 잔 할 때는 감동이 밀려온다. 물외에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흘이 지나니 기운이 없어져서 눕고 싶은 생각뿐이었지만, 계속 프로그램에 맞춰서 해야 하니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센터는 학교처럼 운영되어서 처음에 요령을 가르쳐 주면 거의 다 스스로 해야 한다.

 

포실 포실한 흙과 잔디를 맨발로 밟을 때는 온갖 잡생각들이 발밑에서 매몰되는 느낌이 들었고, 세월을 거슬러 유년시절에 들판을 뛰놀던 기분도 들었다. 비온 뒤에 걸을 때에는 잘팍거림이 좋았고, 햇살 좋은 날엔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 사이로 지나는 바람이 좋았다.

 

시간이 지나도 체지방이 빠지지 않자 디톡스 클린 이란 생약성분의 과립을 아침저녁으로 먹었다. 점점 양은 줄었지만 내 몸에서는 찌꺼기가 계속해서 배설 되었다. 사, 오일이 지나자 점점 기운이 빠지고 생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처럼 죽을 지경이었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온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프로그램을 같이한 분들은 대부분 암환자였다. 그리고 더 이상 병원에서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분들이었다. 절대 절명의 시간을 보내는 그 분들 앞에서 힘들다는 내색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 중에 일곱 살짜리 아이도 그렇게 힘든 과정을 엄마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들은 장기간 입소하여 단식 후에도 계속 치료를 받는다. 밝고 영민하고 착한 그 아이는 단식원의 꽃이었다. 보면 웃음이 절로 나고 주위가 향기로 가득해지는 사람꽃말이다. 지금도 나는 그를 위해 간절히 마음의 촛불을 켠다. 꼭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먼 훗날 이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서 세상을 빛내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엄마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는 그날을 기다린다.

 

물만 먹고 일주일을 지낸 결과 몸무게가 오 킬로그램이 빠지고 체지방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후각이 예민해져서 섬유린스나 화장품 냄새 등 평소에 거슬리지 않았던 것들이 비위가 상해 견딜 수 없었다. 막바지엔 구역질이 나고 입이 말라 말하기조차 힘들었다.

 

단식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집이 아닌 천국에 온 것 같았다. 지옥에서 탈출한 것 같이 힘이 다 소진 되었다. 조용한 안방에 누워보았다. 스르르 꿀맛 같은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한 참을 지나 일어나 보니 남편이 와 있었다. 평소 못마땅했던 남편도 새삼스레 사랑스런 모습이었다. 지겨웠던 이곳이 행복이 가득한 비둘기 집처럼 보였다.

 

먹는 즐거움이 이렇게 큰 줄 미처 몰랐다. 기초적 욕망인 본능이 앞선다는 걸 깊이 깨달았다. 사과 반쪽을 오래 씹으며 새콤달콤함에 취했고, 장아찌를 먹을 수 있고, 묽은 된장국을 먹을 수 있게 될 때 마다 충만감이 밀려왔다.

 

오십이 넘은 지금은 인생의 짐을 벗고 여유롭게 살만하게 되었는데도 스스로를 마치 불행한 사람 인 양 취급 했다. 이런 극한의 경험이 삶의 멜로디가 되어 인생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게 한다. 내 몸의 것을 다 비우고 소박한 음식으로 건강을 회복 하듯이, 욕심과 몹쓸 생각을 버리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생의 즐거움을 찾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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